[한경에세이] '위기'라는 것

입력 2024-03-13 18:54   수정 2024-03-14 00:43

기업을 경영하면서 ‘위기’와 마주쳐보지 않은 사람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인생도 그러하듯 위기는 그림자처럼 평생을 피할 수 없이 따라다닌다. 해가 중천에 뜨면 그림자는 짧아지지만 석양에서는 길어진다. 기업에서는 내적 요인이나 외부적 영향으로, 개인적으로는 실수든 운명이든 간에 우리는 위기란 놈과 어깨동무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흔히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들 말한다. 궁금해서 한자와 영어 어원을 찾아봤다. 근거가 있다. 먼 옛날부터 동서양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하다. 위기(危機)의 기(機)는 나무로 만든 베틀을 그린 것이다. 날실과 씨실이 서로 물리고 물리는 베틀은 정교한 도구였다. 자칫 방심하면 망친다. 실패와 성공이 한순간에 공존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機)자에서 계기, 기회라는 의미가 파생됐다. 영어(crisis) 어원은 그리스어 동사 ‘크리네인(krinein)’이다. 생사의 중요한 갈림길에서 판단, 결정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눈앞에 닥친 위험(danger) 그 자체보다 판단하고 대응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데 무게가 실린 단어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지혜다.

전통적인 카드사도 위기를 맞고 있다. 정보기술(IT) 발달로 지급결제 시장에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플라스틱 카드를 대체하는 다양한 간편결제 플랫폼이 속속 출현하면서 카드사들은 과거보다 더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임직원과 회의할 때 어떤 자세로 대처하는지에 따라 위기 상황을 오히려 최고의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자주 강조하곤 한다.

조금 오래전 일이지만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하계올림픽 펜싱 개인전에 출전한 스무 살 시골 청년 박상영의 위기와 반전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박상영은 2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13-9로 뒤지고 있었다. 두 점만 잃으면 우승은 물 건너간다. 휴식 시간에 TV 카메라가 그를 클로즈업했다. 앉아서 눈을 부릅뜬 채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래 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이 말의 반복 또 반복이었다. 3라운드가 시작되자 14-10으로 매치포인트까지 몰린 상황이 됐다. 그런데도 그는 내리 5점을 따냈고, 두 팔을 들고 포효했다. 외국 언론은 펜싱 경기 사상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금메달이라고 했다. 그가 주문을 외는 동영상은 삽시간에 인터넷을 뒤덮었다.

박상영 선수를 생각하면 사석성호(射石成虎)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한 사냥꾼이 깊은 산에 갔다가 호랑이를 보고 먼저 잡지 못하면 죽겠다는 생각으로 사력을 다해 활을 당겼다. 가까이 가서 보니 화살은 단단한 바위에 박혀 있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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